김선욱 학생 이야기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자 인터뷰”
2025.01.082024년은 산업공학과가 뛰어난 성과를 거둔 한 해였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성과로, 산업공학과 20학번 김석욱 학생이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이 주관하는 ‘2024년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대한민국 인재상은 창의와 열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잠재력과 성장가능성이 뛰어난 우수 인재를 발굴・시상하는 상입니다. 김석욱 학생의 구체적인 수상 스토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Q. 본인 소개
안녕하세요. 아직 졸업이 아득한 20학번 김선욱입니다 (웃음). 산업공학과 디자인을 복수전공하고 있고, 군휴학을 하고 산업기능요원 대체복무를 위해 스타트업에서 AI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Q. 성장 과정
어렸을 때부터 제가 생각해도 저는 참 괴짜같은 학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늘 제게 하시는 말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었으니까요. 물론 주변 어른들께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는 좋은 별명을 듣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수학을 전공하신 부모님과 고등학교 수학 교사셨던 아버지의 영향 덕택인지 누구보다 학교라는 환경에 자부심과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강한 학생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수학을 다른 친구들보다 좀 일찍 접했고, 그것 덕택에 주변 사람들보다 특히 수학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편, 학창 생활은 초등학생 때부터 지옥 같았습니다. 궁금한게 많아서 질문을 많이 했는데, 거기에 더 나아가 나서기 좋아하고, 괴짜 같은 성향까지 있는 반면, 몸은 약하고, 잘 울기까지 해서 교우 관계가 좋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주변 학생들로부터 본격적으로 학교폭력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는 제게 생존의 수단으로 변해갔습니다. 교육에 관심이 많으셨던 어머니께서 제게 요구하시는 것 이상으로, 유일하게 학교에서 잘했던 공부조차 못하면 저를 지지해주시던 선생님들도 제게 등을 돌리고 제가 도움을 요청할 때 아무도 저를 도와주지 않을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같은 학군의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이러한 괴롭힘은 더 지능적으로 변해가기도 했었습니다. 같은 행동으로 맞받아치게 된다면, 저 역시 같은 사람이 된다는 생각이 아득바득 버티며 하루하루를 버텨왔었습니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인터넷 방송인이라는 꿈이 생겼습니다. 당시에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을 너무나 좋아했는데, 마인크래프트라는 환경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방송했던 당시 아프리카tv의 양띵과 악어를 보고 하루하루를 버틸 힘을 얻었고, 저도 그렇게 남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거의 매일 새벽까지 방송을 보면서 내일 방송을 보기위해 하루만 더 살자, 하루만 더 살자를 반복하면서 꿈이 커졌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자퇴를 하고 개인방송에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부모님께 이 이야기를 하니 헛소리로 치부하셨고, 계속 방송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이렇게 한 번 꿈이 장벽으로 막히니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인디게임 개발자가 되어, 이런 인터넷 방송인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게 되면 남들이 하루하루에 미련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위한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기에는 주변에 게임 개발은커녕 기초적인 프로그래밍조차 어떻게 시작해야하는지 물어볼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과학고에서는 프로그래밍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과학고를 거쳐 대한민국 최고의 게임 개발자를 배출해낸 KAIST 전산학과를 거쳐, 메이플스토리 같은 수많은 게임을 낸 넥슨에 입사하여 일하면서 인디게임 개발도 같이 하자는 인생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운 좋게 부산과학고에 입학했지만, 여전히 힘든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미 과학고 내에는 과학고/영재학교 전문 학원가에서 이미 몇 년간 공부하며 입학 전부터 신입생들끼리 끈끈한 커넥션이 있는 상황이었고, 저는 이것을 모르고 그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서 친해지려던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켜, 다시 지옥같은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과학고에서는 유일한 자부심이었던 공부도 더이상 저의 장점이 아니었습니다. 1학년 성적으로 조기졸업 대상자들을 다 정하기 때문에 따라잡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저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고, 게임계의 현실 등에서도 접하게 되면서 제가 가진 꿈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혼란이 왔습니다.무엇보다 프로그래밍 실력을 기르기 위해 팀장으로나마 열심히 하려고 최선을 다했던 정보 R&E에서, 정보 올림피아드에서 좋은 성적으로 수상하거나 함께 해야했던 팀원들은 각자 배움을 요청하는 저의 도움을 무시한 채 각자의 대회에만 집중했고, KSASF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든 책임은 저에게 떠넘겨진채로 팀원들이 하나둘 대회에서 빠지겠다고 하고, 개인 대회를 준비하며 그동안 참여해오지 않았던 팀원들이 진행 상황을 보고 저를 단톡방에 초대하여 각종 모욕적인 말과 비난을 쏟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버텨오던 정신이 그대로 무너져버렸습니다. 충격에 며칠간 식사도 못하다가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었고, 이는 2학기가 시작하고도 이어져 결국 출석일수 문제와 요양, 무엇보다 더이상 이 환경에서 다시 생활하는 것 자체가 가시방석 같았기에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만 마치고 질병휴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년간 질병휴학을 하는 동안 세상에 나오기가 두려워, 불 꺼진 방에서 울다가 지쳐 쓰러지고, 깨어나면 다시 울다가 지쳐 쓰러지고를 반복했었습니다. 목소리가 멈추면, 부모님이 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저를 포기하지 않고 다시 방 밖으로 끌어내 준 귀인이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분은 과학고에서 항상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3학년 선배셨습니다. 학교에서도 우연한 계기로 연을 맺게 되어, 공부법을 물어보기도 하고 점심시간마다 만나며 친해졌었습니다. 휴학을 하고 난 후, 방 안에만 있던 제게 연락해 밖에서 만날 약속을 잡고, 공부 때문에 바쁠 때도 시간을 내어 상담해주고, 삶의 방향성을 잡는데 많은 인사이트를 주셨으며, 세상이 제가 생각하는 것이 이상으로 넓고 많은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어두웠던 제 방은 두려움, 원망, 분노, 방황 대신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 새로운 꿈, 세상에 관한 관심 등으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순수하게 학문으로서 공부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제가 그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남들이 하루하루에 미련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목표는 평생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그동안 종합게임 인터넷 방송과 함께 제게 하루하루 살아갈 힘을 줬던 만화라는 형태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자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방에서 끌어내주셨던 선배님처럼, 저도 누군가를 도울 뿐만 아니라 그 도움이 새로운 도움으로 이어져 사회에 큰 가치를 대물림하는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이를 위한 첫 번째 목표가 바로 과학고에 복학하여 졸업까지 마무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부산과학고의 역사상 첫 휴학생이었습니다. 다시 가해자들과 학교에서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지만, 학교폭력 피해 후유증으로 휴학하게 된 제가 자퇴나 전학 등을 선택하게 된다면, 안 좋은 선례를 남길 뿐 아니라 앞으로도 피해자들이 당당해지기 어려워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성공한다면 앞으로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휴학을 선택하게 될지 모르는 후배님께도 용기를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닥터 프로스트를 그린 이종범 작가님을 롤모델로 삼고, 심리학과로의 교차지원에 도전했습니다. 뜬금없이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과학고에서 예술대학교나 문예창작과로 가긴 어렵다고 생각했기에, 이종범 작가님처럼 심리학과에서 사람에 대한 이해를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고등학교에서 뇌과학동아리를 창설해 운영했고, 이때 우연히 접했던 인공지능 관련 지식으로 실제 개발까지 시작하게 되면서 AI 분야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많은 학창시절을 보내며 무사히 졸업까진 해냈지만, 아쉽게 교차지원했던 대학에 모두 떨어지며 재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대학에 도전하기 위해 재수학원에 등록했지만, 저를 둘러싼 배경으로 과학고 졸업만큼은 마치겠다는 오기로 눌러왔던, 만화가라는 꿈이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을 수준으로 부풀어올랐습니다. 그렇게 저는 수능 대신에 만화학원을 선택했고, 이 선택은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이 되었습니다. 현직 웹툰 작가 선생님께, 만화 제작 과정을 배우면서 만화 제작 과정에 신경써야할 많은 디테일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화학원을 다니던 중, 저를 가르쳐주시던 김도헌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저도 이 학원의 수강생이었습니다. 10년 전, 작업실에 종이와 잉크만 가득했지만, 지금은 타블랫과 컴퓨터만 있습니다. 10년 뒤, 선욱 씨가 배워온 기술이 변화를 불러오면 좋겠네요.’
언젠가 반드시 제 작품을 만들겠지만, 노동집약적이라는 환경의 창작계의 가장 큰 문제를 풀기에 제가 가장 적합한 사람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창작에만 전념해왔던 사람들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임과 동시에 창작자들의 건강과 생활을 장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크게 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렇게 UNIST에 진학해서, 인공지능을 실무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산업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고, 만화 같은 창작 작품의 작업 과정에 어떻게 AI를 녹이고 서비스를 개선할지 고민하고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디자인을 복수전공하게 되었습니다. 1학년 때는 시선을 넓히고 싶어 다양한 도전을 많이 해봤습니다. 이때, 캠퍼스 특허 유니버시아드 대회의 지도를 부탁드리게 된 것을 계기로 산업공학과 임치현 교수님께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본격적으로 제 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디자인학과 이경호 교수님의 Expressive Computing Lab (EXPC)에 합류하여 AI를 활용한 만화 선화 개선 연구를 시작으로 AI 이미지 생성과 서비스 사용성 개선을 위한 HCI 연구에 집중하며 국제 1저자 논문 1편과 국내 1저자 논문 2편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때, 연구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1년간 휴학을 하고 랩실에 출퇴근을 하면서 연구를 했었는데, 덕택에 좋은 성과를 얻고 2023년에 대통령과학장학생으로도 선발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담으로 휴학이라는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이, 고등학교 때 이미 휴학을 해보고 1년동안 쉬기만 해도 사고가 더 크게 성장하고, 얻어가는 것이 컸다고 생각했기에 큰 고민하지 않고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업 외적으로 교내 프로그래밍 동아리 HeXA에서 개발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소통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컴퓨터공학과가 아닌 학생 중 최초로 회장까지 해보게 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될만한 HeXA 선후배들을 이어주기 위해 동아리를 처음 창설하시고 초대 회장을 역임했던 고건일 선배나 한국인 최초로 OpenAI에 합류했던 김태훈 선배, Microsoft에서 일하시는 한충우 선배, Amazon 밴쿠버에서 일하다가 도쿄의 Mercari에서 활약하고 계신 곽재원 선배, CMU에서 박사를 하시는 김대화 선배, Harvard에서 박사를 하시는 이충기 선배, 인디게임을 개발하시는 이건우 선배 등 여기서 다 언급하지 못할 정도의 많은 HeXA 선배님들을 만나고 후배들과 이어주는 과정에서 저 역시 많은 조언을 얻고 실력적으로도, 가치관적으로도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3학년 1학기 때 학업과 동시에 인공지능대학원 김주연 교수님의 추천으로 지원한 크래프톤의 자회사인 띵스플로우의 Remote 인턴으로 합류하게 되었고, 9월부터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군휴학을 하고 이미지 중심의 프로덕트를 개발하는 AI 엔지니어로 산업기능요원 대체복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대체복무를 하는 김에 서울웹툰아카데미라는 유명한 만화학원에서 진행하는 SideB 만화사교클럽 팟캐스트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창작가들과 소통하고 작품에 대해 논한 내용을 녹음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롤모델로 삼았던 닥터 프로스트 이종범 작가님과도 직접 만나서 명함을 교환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습니다. 지금 다시 AI로 만화를 중심으로한 콘텐츠 창작 환경에 기여하겠다는 목표에 더 적합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되돌아보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언가 목표가 생기고 거기에 꽂히면 몇 년이 걸리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이뤄내고야 만다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힘든 삶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하게 하고 싶다는 어린 저의 꿈이, 뒤따라오는 이들을 도와주며 도움의 대물림을 만들고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가치관으로, 노동집약적인 창작 환경을 개선하여 창작자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고 더 쉬운 창작 과정과 다양한 콘텐츠로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저 역시 언젠가 만화가로서 세상을 울리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아직도 변하지 않는 꿈으로 계속 이어지고 세상에 확산되는 것이 지금 저의 가장 큰 정체성입니다. 그 과정을 즐기고 있는 지금, 저는 행복합니다.
– 수상 과정과 활동
Q. 대한민국 인재상에 지원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시절, 친했던 한 선배께서 ‘너 같은 친구들이 꼭 받아야 하는 상이 있다’며 대한민국 인재상의 존재를 알려주셨고, 수상자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마련해주셨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한민국 인재상을 지원했고 운 좋게 지역심사에 통과하여 면접까지 진행했지만, 아쉽게도 최종심사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6년 전, 저는 한 가지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내 신념이 변하지 않고,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해 살면서, 언젠가 다시 한번 대한민국 인재상에 도전할만한 자격이 된다고 판단했을 때, 다시 한번 도전해보자.’
산업기능요원을 하며 개발한 반려동물 AI 프로필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다시 도전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수상까지 이어지면서 6년간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습니다.
Q.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을 위해 어떤 준비와 활동들을 해오셨나요?
대한민국 인재상을 염두에 두고 준비했다기보다는, 열정을 가지고 임한 활동들이 자연스럽게 좋은 성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반려동물 AI 프로필 생성기를 개발하며 기술과 창의력을 결합한 프로젝트를 완성했고, IASDR Conference에 1저자로 게재한 논문을 통해 이미지 생성 AI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제2회 KAIST-POSTECH-UNIST 데이터 사이언스 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데이터 분석과 AI 코딩 능력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과들은 단순히 결과를 위한 활동이 아니라, 제가 좋아하고 도전했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엮인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Q. 심사 과정에서 본인의 어떠한 장점이나 이력을 어필하셨나요?
심사 과정에서는 제가 가진 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다양한 역량과 열정의 조화를 강조했습니다. 제품 개발, 연구, 경진대회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모두 성과를 냈던 점을 바탕으로, 엔지니어, 연구자, 리더의 정체성을 가지고 문제를 다각도로 접근하는 능력과 도전정신을 어필했습니다. 특히 발표 당시, 직접 제작한 AI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며 단순한 기술적 역량을 넘어 창작자로서의 정체성도 보여드리려고 했습니다. 이런 준비 과정에서, 저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방식을 고민했던 것이 심사위원분들께 좋은 인상을 남긴 것 같습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대한민국 인재상 서류에 담지는 않았지만, 띵스플로우 ML Scientist Intern의 자격으로 AI 대학원 심포지엄에 참여하여 선보였던 AI로 창작했던 만화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엔지니어면서도 만화가 지망생이라는 제 정체성이 가장 잘 담겨있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입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영화 <바비>의 트레일러 영상을 캡처하고, Stable Diffusion과 ControlNet, LoRA를 활용해 캐릭터를 고정시키는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이후, 생성된 이미지를 재구성하여 하나의 완성된 만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AI 기술이 창의지원도구(creativity support tool)로서 얼마나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으며, 심포지엄 참가자들에게도 AI와 예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 가치관과 리더십
Q. 본인만의 리더십 철학이나 스타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 리더십 철학은 책임감과 화합, 그리고 유연성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리더는 팀의 성과뿐만 아니라, 발생하는 모든 문제와 실패에 대해 최종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트루먼 대통령의 “The buck stops here”라는 말처럼, 리더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팀원들이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신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동시에, 팀의 화합은 리더십의 핵심입니다. 뛰어난 개인들이 모인 팀이라도 각자의 의견이 충돌하고 분열이 발생하면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이때는 리더로서 팀원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각자의 강점을 조화롭게 연결하는 접착제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반대로, 상황이 우유부단하거나 지지부진할 때는 리더가 과감한 결단을 내려 팀의 방향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본질적으로 팀이 안정적으로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공은 팀원들에게 돌리고, 과는 리더가 책임지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팀 전체가 목표를 넘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Q. 사회 기여와 봉사활동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저는 사회 기여와 봉사활동이 개인의 도덕적 책임을 넘어, 사회 전체의 긍정적인 변화와 지속 가능성을 위한 도구라고 믿습니다. 제가 받은 많은 기회와 혜택은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온 것이기에, 마땅히 이를 사회 기여와 봉사활동의 형태로 환원함이 옳다고 믿습니다.
특히 UNIST에 입학한 2020년부터 5년간 중학생 교육봉사를 진행하며,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새로운 세대를 위한 씨앗을 심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봉사활동을 통해 제가 몰랐던 제 부족한 점을 깨닫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를 더 넓게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단순히 개별적인 활동에 그치지 않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일에 더욱 집중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가진 기술과 지식을 활용해 노동집약적 환경을 개선하거나, 사회적 약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나눔의 철학이 지속 가능한 선순환 구조로 자리 잡아, 더 밝고 도전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Q.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나 메시지가 있다면?
저는 ‘도움은 대물림될 때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누군가의 후배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선배일 것입니다. 단순히 학년이나 나이가 아니라, 각자가 경험한 분야와 위치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선배님들이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선배님들의 조언과 지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후배님들께 전하고 싶은 말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망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배님들에게 다가가고, 질문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얻는 배움은 여러분을 더 크게 성장시킬 것입니다. 반대로, 선배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후배들의 손을 놓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도움은 단순한 한 번의 조언이 아니라, 후배들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남길 수 있는 씨앗이 됩니다.
때로는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혼자 길을 개척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경험과 지혜를 후배들에게 나누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선순환이 시작됩니다.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모여 사회를 더 따뜻하고 도전적인 공간으로 만들어간다고 믿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나누는 문화가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미래 계획
Q. 수상 후의 소감 & 앞으로의 포부는 어떻게 될까요?
처음 결과를 확인했을 때, 6년 전의 자신과 한 약속을 끝내 지켜냈다는 사실에 하늘을 떠다니는 듯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이 상은 단순히 성과를 인정받는 자리일 뿐 아니라,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책임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붙은 인재상은 개인의 영광을 넘어, 더 큰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상을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니, 아직 사회에 제가 꿈꾸는 바를 구체적으로 보여드리거나, 직접적인 이바지한 부분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경험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 스스로 더욱 갈고닦으며, 제가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인디게임 산나비의 OST에 나오는 “끝났다는 것은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이라는 문구처럼, 이번 수상은 저에게 새로운 도전의 시작입니다. 기쁨은 이제 추억 속에만 간직해두고, 실천과 도전으로 이 상의 의미를 증명하며, 지금의 저처럼 별을 쫓는 사람들에게 ‘김선욱’이라는 이름 석 자만으로 길을 밝혀주는, 그런 별이 되고자 합니다.
Q. 앞으로의 진로나 꿈은 무엇인가요?
제 최종 목표는 만화가로서 세상에 오래도록 기억될 작품을 남기는 것입니다. 제 작품이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고, 더 나아가 그들의 일상에 작은 희망을 더할 수 있다면, 그보다 큰 보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현재 구상 중인 방안 중 하나는 AI 콘텐츠 스튜디오를 창업하는 것입니다. 이곳은 공학자와 창작자가 협력하여 서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SuperIP를 양산하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또한, 엔지니어로서 제가 개발한 기술이 노동집약적인 환경을 개선할 뿐 아니라,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데에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적 솔루션과 사회 제도를 마련해가는 것이 또 하나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Q.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나 기여를 하고 싶으신가요?
제가 꿈꾸는 스튜디오는 단순히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K-콘텐츠의 글로벌화와 더불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창작자와 기술자들이 협력하여 만든 작품이 세계 무대에서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콘텐츠 산업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동시에, 기술이 사람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사회적 가치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제가 개발한 기술이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는 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합니다. 제가 받은 도움과 기회를 다시 사회에 환원하고, 그 나눔이 또 다른 도움으로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공헌 문화를 만드는 것이 저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 개인적인 이야기
Q. 여러 대외활동 하고 있으신데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절박함과 스스로를 증명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창 시절, 저는 우등생이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열등생처럼 느껴졌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재수를 통해 UNIST에 입학한 경험은 저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지원했던 다른 모든 대학에서 불합격한 뒤, ‘나에게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하고 간절히 바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있던 상황에서, 전화 추가합격 마지막 날 겨우 UNIST 특기자 전형에 합격했습니다. ‘꼴지로 들어왔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절박했던 그 순간은, 제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증명해야겠다는 강한 동기를 심어주었습니다.
‘시도하면 실패할 수도 있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증명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도전을 바라보며, 실패하더라도 손실이 크지 않고, 성공했을 때 얻는 것이 분명한 도전이라면 반드시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도전이 이어지다 보니 대외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도전 그 자체가 마치 스포츠와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게 대외활동은 단순한 이력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을 증명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절박함에서 시작된 이 도전은 앞으로도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Q. 힘들 때 극복하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나요?
대화와 예술, 그리고 루틴을 통해 힘든 순간을 극복하려고 합니다.
먼저, 힘든 감정을 혼자 감추기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로 풀어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마음속에 쌓인 감정은 결국 병이 될 수 있고, 정신과 몸은 연결되어 있기에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면 몸까지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곤 합니다.
두 번째로, 예술을 통해 감정을 승화시키려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만화방에서 만화를 읽으며 작가의 생각과 작품 속 철학을 분석하는 데 몰입하거나, 노래방에서 고음이 가득한 곡을 부르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여가를 넘어서 감정을 소화하고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정해놓은 루틴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매일 말해보카와 스픽으로 영어 공부를 하고, 일주일에 3번은 의도적으로 운동을 하는 습관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상황에 따라 모든 루틴을 다 지키지 못할 때도 있지만,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을 때 이러한 루틴을 통해 다시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고자 합니다.
저에게 대화, 예술, 루틴은 단순한 활동을 넘어, 힘든 순간을 극복하고 더 나아가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들입니다.
– UNIST
Q. 산업공학과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 역시 아직 졸업까지 아득히 남았지만, 그럼에도 여러분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은, 세상에는 정말 상상 이상의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다양성을 체험할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졸업 전에 회사 인턴을 경험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는 심도 있는 학문적 지식을 쌓을 수 있지만, 회사에서는 여러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협력하며 세상의 다양성을 배우고, 자신의 진로를 구체화할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채용 프로세스를 온전히 경험해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고, 회사 입장에서 산업공학도로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온전히 분석하고 파악해볼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또한, 인턴으로 합류하게 되어 사내에서의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된다면, 단순히 업무를 배우고 경력을 쌓는 것을 넘어, 본인의 진로를 구체적으로 계획하거나 창업, 취업, 학계 어떤 진로를 선택함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자산이 됩니다.
체험형 인턴과 같은 단기 프로그램도 많으니, 부담 없이 한 번 도전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짧게 주거하는 것이 염려되신다면 레지던스를 알아보는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인턴 기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과 커피챗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추천합니다. 많은 분들이 기꺼이 시간을 내어 경험과 조언을 나눠주실 것입니다. 이런 만남은 예상치 못한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여러분의 성장을 돕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경험은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되는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도전하고, 성장하실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혹시 도움이나 조언이 필요하신 후배님들이 계시다면, 언제든 제 메일(seonuk.kim@unist.ac.kr)로 연락주세요.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이나 도움이 있다면 기꺼이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언제나 훌륭한 가르침을 주시는 임치현 교수님을 비롯한 모든 산업공학과 교수님, 연구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주신 디자인학과 EXPC Lab의 이경호 교수님, 산업계에서 실전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신 인공지능대학원의 김주연 교수님, 그리고 대한민국 인재상 도전을 위한 최종 승인을 흔쾌히 허락해주신 정보바이오융합대학 심재영 학장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미처 언급하지 못한 따뜻한 응원과 축하를 전해주신 모든 UNIST 교수님들, 그리고 제 영혼의 고향 HeXA를 비롯한 동아리 친구들과 선후배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UNIST와 인재상의 이름에 기대거나 가려지지 않으며, 꿈을 실천하고 스스로 빛나는 존재로 성장하여 그 명예를 더욱 드높일 수 있도록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